[사진출처: investopedia]
미국의 대표적인 동전이자 1센트 가치로 오랜 시간 대중 곁에 머물러 있던 ‘페니(Penny)’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예정이다. 미국 재무부는 최근 1센트 동전의 신규 주조를 2026년 초부터 전면 중단하고, 순차적으로 유통에서 퇴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번 결정은 단순한 화폐 개편을 넘어 미국 현금 정책의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디지털 결제의 급속한 확산과 더불어, 페니의 제조비용이 실제 가치보다 높다는 점이 결정적 배경으로 작용했다.
■ 제조비만 3배…“1센트에 3.7센트 쓴다”
재무부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페니 한 개를 만드는 데 약 3.7센트가 소요됐다. 이로 인해 미국 정부는 연간 약 5,600만 달러의 손해를 입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페니는 액면가는 1센트지만, 사용되는 금속(주로 아연과 구리)의 가격 상승과 인건비, 주조 유지비 등이 겹쳐 ‘적자 동전’이 됐다. 특히 2020년대 들어 아연 가격은 2000년대 초반 대비 두 배 이상 상승했으며, 이는 동전 제조 단가에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했다.
재무부 관계자는 “경제적 효율성과 시대 흐름을 반영한 결정”이라며 “페니 폐지는 수년간 논의되었고 이제는 실행의 단계”라고 밝혔다.
■ 디지털 시대…현금보다 카드가 주류
한편, 동전 폐지 결정의 또 다른 축은 디지털 결제의 확산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발표한 2024년 소비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결제 중 현금의 비중은 16%에 불과하며, 이 또한 매년 감소하는 추세다. 특히 55세 이하의 소비자들은 카드나 모바일 결제 수단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며, 현금을 선호하는 소비자는 12%에 머무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액 결제의 대표였던 페니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점차 쓰임을 잃고 있다. “편의점에서도 페니는 거의 사라졌다. 거스름돈에 포함되더라도 그대로 주머니에 남는 경우가 많다”는 현지 반응도 이어지고 있다.
■ 캐나다에 이어 미국도…글로벌 현금 개편 신호?
실제로 북미 이웃국인 캐나다는 지난 2013년부터 1센트 동전 생산을 중단했으며, 이후 모든 현금 거래에서 반올림(5센트 단위) 제도를 도입했다. 미국 역시 이를 따라가는 형태로, 페니 폐지 이후 모든 거래에서 ‘반올림 요금제’가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12센트 금액은 0센트로, 34센트는 5센트로 반올림하게 된다.
미국 재무부는 “폐지 이후에도 기존 유통 중인 1센트 동전은 법정 통화로서의 효력을 유지할 예정”이라며 “현금거래에는 변화가 있으나, 전면적인 혼란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 역사와 상징…‘링컨 페니’의 의미
페니는 단순한 화폐가 아니었다. 1909년부터는 미국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초상화가 새겨지며, 정치적 상징성과 교육적 가치도 부여됐다. 특히 1909년은 링컨 탄생 100주년이기도 하다. 당시 미국 최초로 실존 인물의 얼굴이 동전에 새겨진 사례로, 많은 국민들의 자긍심이 담긴 화폐였다.
심지어 2012년, NASA의 화성 탐사선 큐리오시티에는 1909년산 페니가 탑재되어 화성 토양 성분 분석 장비의 보정 기준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과학기술과 역사가 만나는 상징적인 사례였다.
하지만 경제적 효율성과 실용성 부족은 이러한 상징성마저 극복하지 못했다. 미국 내 일부 수집가들과 역사 보존 단체들은 “문화유산적 가치가 무시됐다”며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 “향후 유사한 화폐 축소 움직임 있을 것”
미국의 페니 폐지는 단지 1센트 동전 하나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향후 5센트 니켈과 10센트 다임 등의 소액 동전들도 비슷한 논의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또한 유럽연합, 일본 등 현금 사용률이 낮은 국가에서도 유사한 정책이 검토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경제학자 데이비드 로우 교수는 “현대 경제는 실질 구매력보다는 디지털 신용 흐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며 “소액 화폐는 그 흐름 속에서 점차 퇴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페니의 퇴장은 단순한 통화 단위 하나의 폐지가 아니라,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디지털 결제 중심의 사회로 빠르게 이동 중인 지금, 페니의 종말은 한 시대의 종언이자 또 다른 시대의 개막을 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