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생산자물가지수가 6개월 만에 하락세로 전환됐다. 한국은행은 4월 생산자물가지수(PPI)가 전월 대비 0.1% 내린 120.24(2020년 기준 100)를 기록했다고 23일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10월 이후 처음으로 하락한 수치다.
이번 하락은 농산물과 공산품 가격의 동반 하락이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특히 석유류, 화학제품을 비롯한 공산품과 배추·상추 등 주요 채소류 가격이 눈에 띄게 내렸다. 다만 반대 흐름도 존재했다. 축산물 가격은 오히려 상승하면서 일부 품목은 가계 물가에 압박을 줄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 농림수산품·공산품 전반 하락…“유가 하락 영향”
세부적으로 보면 농림수산품은 전월 대비 1.5% 떨어졌다. 특히 농산물이 5.8% 하락해 전체 생산자물가를 끌어내렸다. 봄철 기후 안정과 수확량 증가, 공급 확대로 가격이 조정된 결과다. 수산물도 0.7% 하락했다.
공산품 역시 0.3% 낮아졌는데, 이는 국제 유가 하락으로 석탄·석유제품이 2.6%, 화학제품이 0.7% 각각 하락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국제 유가는 5월 들어 21일까지 평균 6%가량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향후 물가에도 하방 압력을 줄 것으로 분석된다.
이문희 한국은행 물가통계팀장은 “전반적인 공급 여건 개선과 유가 하락으로 공산품과 농산물 가격이 조정을 받았다”며 “5월에도 이 같은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 달걀·돼지고기 가격 급등…축산물만 ‘역주행’
다만 축산물 가격은 다른 품목과는 반대로 뚜렷한 상승세를 보였다. 4월 한 달간 달걀 가격은 11.4%, 돼지고기는 8.2% 급등했다. 이에 따라 전체 축산물은 전월 대비 4.8% 상승했다.
계절적 요인 외에도 조류인플루엔자(AI) 여파로 인한 산란계 감소, 사료비 상승 등이 가격 인상의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돼지고기의 경우 5월 가정의 달 수요 증가와 겹쳐 추가 상승 압력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축산물 가격 상승은 가공식품 원가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소비자물가에는 상방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서비스·공공요금은 소폭 상승…소비자 체감과는 온도차
서비스물가는 음식점과 숙박업(0.6%) 등의 영향으로 0.2% 상승했다. 전력·가스·수도 및 폐기물 처리 분야도 0.4% 오르며 전반적으로는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다. 다만 국민 체감 물가와 괴리감은 여전하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실제로 가계에서 체감하는 ‘장바구니 물가’는 축산물과 일부 가공식품 중심으로 여전히 부담스럽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정부는 생산자물가 하락이 소비자물가 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유통 단계에서의 가격 인상 요인을 면밀히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 공급물가·총산출물가도 동반 하락
한편, 수입품까지 포함해 측정하는 국내 공급물가지수는 3월보다 0.6% 하락하며 전반적인 물가 안정 흐름을 반영했다. 원재료(-3.6%), 중간재(-0.4%), 최종재(-0.1%) 모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출하분에 수출품까지 포함한 총산출물가지수 역시 0.3% 하락했다. 이 역시 농림수산품(-1.4%), 광산품(-0.8%), 공산품(-0.6%) 등이 하락세를 견인했다.
◼ 전문가 “일부 품목 가격변동성 여전…불확실성 경계해야”
전문가들은 이번 생산자물가 하락이 긍정적 신호인 동시에, 일부 품목의 가격 변동성이 여전히 높다는 점을 지적한다. 특히 농산물과 축산물은 기상 요인이나 질병 발생 등 외생 변수에 민감한 특성이 있어 향후 추이를 신중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이재훈 연구위원은 “유가와 공산품 중심의 물가 하락은 긍정적인 흐름이지만, 가계 입장에서 체감되는 식품 중심의 인플레이션 압력은 여전히 존재한다”며 “정책당국은 소비자 부담이 직접적인 축산물과 농산물 가격 안정에 주목해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